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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를 둔다고 해서, 미워하는 건 아니에요

  “더 이상 예전처럼 지내지 않아도, 더 이상 매일 연락하지 않아도, 내가 그 사람을 미워하는 건 아니에요. 그저, 지금은 거리가 필요할 뿐이에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분명히 ‘적당한 거리’라는 게 있어요. 너무 가까우면 숨이 막히고, 너무 멀어지면 사라질까 두렵고.   그 사이 어디쯤, 서로를 지우지 않으면서 나를 보호할 수 있는 거리.   나는 한동안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너무 가까이 있었어요. 상대의 말에 민감하게 반응했고, 내 감정보다 상대의 기분을 먼저 살폈고, 조금만 어색해져도 내가 뭔가 잘못한 건 아닌지 혼자 고민했어요.   그러다 결국 지쳤어요.   그래서 조용히 거리를 두기로 했어요. 연락을 줄이고, 감정을 깊이 나누지 않고, 내가 먼저 꺼내던 말들을 잠시 멈췄어요.   그랬더니 “요즘 나한테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서운하게 왜 이래?”   그 말들이 쏟아졌고, 나는 어쩐지 미안한 사람이 된 것 같았어요.   하지만요, 나는 그 사람을 미워한 적 없어요. 그저 내가 너무 가까워져 있었던 거예요. 내가 나를 지우는 방향으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거예요.   거리를 둔 건 그 감정을 끝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안에서 내 감정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어요.   누군가를 좋아하면서도 멀어질 수 있어요. 다정한 마음을 남겨둔 채 관계를 재정비할 수 있어요.   그건 미움이 아니라 성찰이에요. 그 마음을 서툴게라도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조금씩 내보려 해요. “내가 널 미워해서가 아니라, 지금은 나를 우선으로 돌보고 싶어서야.” “예전처럼 못 해줘도, 마음이 없어진 건 아니야.” “지금의 거리가 우릴 지켜주는 모양일지도 몰라.”   그 말들이 상대를 납득시키지 못해도 괜찮아요. 적어도 내 마음이 나를 오해하지 않게 말해주는 일이니까요.   거리를 둔다는 건 누군가를 밀어내는 일이 아니라,...

감정도, 시간도 나눌 수 없는 시기가 있어요

 

정서 탈진, 정서 휴식

“좋아하지 않아서가 아니에요.
멀리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저 지금은
내 마음 하나 감당하기도
벅찰 뿐이에요.”

 

사람을 밀어낸다는 표현이
한때는 참 무섭게 느껴졌어요.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구나.”
그 자책이 오래 따라다녔거든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알게 됐어요.
누군가를 밀어낸 게 아니라,
그저 감정을 나눌 수 없는 시기가 있다는 걸.

 

지금의 나는
너무 많은 걸 감당하고 있어요.

일상이 빠듯하고,
마음은 쉽게 무너지고,
생각은 뒤엉켜 있고.

 

그 속에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고,
시간을 들여 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어느 때보다 어렵게 느껴져요.

 

그건 싫어져서가 아니고,
마음이 식어서가 아니라,
그저 내 안의 여백이 사라졌기 때문이에요.

 

사람들은 말해요.
“연락이 뜸해졌네?”
“요즘 왜 이렇게 혼자 있어?”
“무슨 일 있는 거야?”

 

그 말에 대답할 여유조차 없을 만큼
내 안엔 말이 아니라
정적이 흐르는 날들이 있어요.

 

그래서 요즘은
‘거리두기’라는 말을
조금 다르게 받아들이게 됐어요.

관계를 멀리한다기보다,
잠시 감정의 회선을 끊는 일.

내가 버티기 위한 방식.

 

그 시기를 지나고 나면
다시 누군가에게 마음을 기울일 수 있다는 걸
이젠 믿게 되었어요.

 

누구에게도 감정 쓰기 어려운 날들엔
그저 조용히 멈추어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꽤 잘하고 있는 거예요.

 

이 시기는
내가 나를 돌보는 시간이에요.

그래서 관계에 대한 죄책감보다,
감정이 회복될 여유를 내게 허락하려고 해요.

 

가끔은 말해요.
“지금은 내가 감정적으로 여유가 없어.”
“아무 일 없어도 혼자 있고 싶은 시기야.”
“내가 널 좋아하지 않는 게 아니야.
지금은 나를 돌보는 게 더 급해.”

 

이런 말이 어색하지 않게 되길 바라요.
사람에게도 감정 휴식기가 필요하니까요.

 

그 시기를
누군가가 이해해주지 않아도 좋아요.

내가 이해하고,
내가 받아들이면 충분하니까요.

 

지금 나는
감정을 나누기보단
내 마음 하나를 조용히 껴안는 중이에요.

그리고 언젠가
이 시간이 지나면,
다시 말 걸고, 다시 웃고,
다시 누군가에게 나를 조금씩 열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조금은 비워둔 채로,
지금은 이대로 있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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