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힘든데, 누군가의 기댐을 감당할 수 없을 때

“누군가 나에게 기대려 할 때,
예전처럼 다정하게 안아주지 못했어요.
사실은 나도…
버티는 중이었거든요.”

　

나는
누군가의 감정을 잘 받아주는 사람이었어요.

긴 말을 들어주고,
다친 마음을 달래주고,
조금 불편한 부탁에도
“괜찮아”라고 먼저 말하던 사람.

　

그게
내가 누군가를 위하는 방식이었고,
나를 필요하게 만들던 관계의 구조였어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였을까요.

누군가가
조금만 깊게 기대오면,
마음이 뻐근해졌어요.
숨이 막히듯 답답해졌어요.

　

내가 피곤해서일까?
정이 식은 걸까?
스스로를 자꾸 의심했어요.

　

하지만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면,
그건
내가 감당할 여유가 없었던 날들이었어요.

　

나도 괜찮지 않았고,
지쳐 있었고,
감정을 들여다볼 여백조차 없었는데

그 위에
누군가의 마음까지 안으려 하니까
그 무게가 감당되지 않았던 거예요.

　

예전 같았으면
다정하게 받아줬을 텐데,
지금은
차갑게 보일까 봐
자꾸 스스로를 숨기게 되더라고요.

　

“미안해, 지금은 안 들을래.”
“나도 요즘은 좀 힘들어.”
그 말을 하지 못하고
그저 점점
거리를 두는 사람이 되어갔어요.

　

그러고 나면
이상하게 또 미안했어요.

왜 나는
누군가의 기댐조차 받아줄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걸까.

　

그 죄책감은
한동안 나를 조용히 무너뜨렸어요.

　

하지만 요즘은
그 마음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려 해요.

기댐을 거절하는 게 아니라,
지금의 내가
받아줄 수 있는 무게를 정직하게 인정하는 것.

　

그게
어쩌면
내 감정을 지키기 위한
가장 건강한 선택이 아닐까 싶어요.

　

가끔은
누군가에게 말해요.

“지금은 그냥
아무 말 없이 옆에 있는 것까지만 가능해.”
“네 얘기, 다 듣고 싶은데
오늘은 내가 버거운 날이야.”
“그 마음 이해해, 근데 나도 오늘은 힘들어.”

　

그 말들이
처음엔 너무 이기적으로 느껴졌지만,
사실은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언어였어요.

　

모든 기댐을 받아야
좋은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기댈 수 없는 순간엔
‘기대지 못함’마저도 안전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진짜 다정한 사람일지도 몰라요.

　

나는 지금도
누군가를 위하고 싶어요.
하지만 그 전에,
내가 무너지지 않는 선부터 지켜보려 해요.

그게
진짜 감정을 지키는 거리이자,
진짜 나를 지키는 다정함이니까요.